top of page

이 모든 게 나사때문이다

나사가 빠져버리는 게 아니었어

아침에 밍기적밍기적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출근 준비를 하고있는데 갑자기 투툭-

"아이고, 오늘하루 조심해야겠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고 아래를 보는 순간, 의자 나사가 하나 떨어져 또르르 굴러왔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무슨 불길한 말인가 신경도 안쓰고 그냥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나사때문이었을까. 아침 오자마자 자리를 바꿔야하는 일이 생겼다. 뭐 자리바꾸는것 쯤이야 별로 게의치 않았다. 문제는 나만 바꾸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동료에게 의견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더 발생한다.

"자리 안바꿔준대? 내가 말해?"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나의 곡해를 더해 분명 뒤에서 그런 말이 들렸다. 아니 사람이 앞에 있는데 바로 뒤에서 특정인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의도란 말인가. 싸우자는건가.

너무 화나서 화장실로 쿵쾅쿵쾅 걸어갔다. 결국 자리 바꾸기 싫다는 동료를 설득해 사무실에 들어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불편한 공기가 머물고, 어렵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우리를 설득했다. 그래서 그러려고 했다고 자리를 어떻게 바꿀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결국 반도 못하고 자리를 바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리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왜 뒤에서 이야기를 하고 결국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들고 서로 불편해지냐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반도 못꺼냈지만

그렇게 아사무사 넘어가나 싶었는데 왠걸.

나사때문이었을까. 동료가 자리가 너무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싫다고 어떻게든 자리를 바꾸고 싶어했다. 게다가, 퇴근시간 쯤에는 동료 자리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프린터기 소리 들리고 소음이 너무 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이게 다 나사때문일까

내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기를 믿어달라며 간절하고도 설득력있게 내게 말해주던 애인이 너무 바빠서 나를 만날 수가 없다고 그만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건 의지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이어나가고 싶어하는 인연은 이어나가고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연락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연락한다고 내 지론은 그랬다. 물론, 내가 여태 겪어본 남자들도 그랬고.

그런데 설득할 생각도 자신도 없었다. 그만큼 짧았고 깊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라는 말로 이 연애를 끝냈다. 오히려 연애한다고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던 오후였다.

그럼에도 얼마 되지 않은 이 짧은 연애는 또 그만큼 생채기를 냈고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나사때문인걸까.

할일은 쌓였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퇴근시간이 되서야 전체회의에 들어갔고 내가 없어도 될만한 자리에 붙들려 30분을 회의에 참석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내가 필요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무슨 일 있어요? 중요한 약속 있어?"

하며 먼저 간 내 동료의 비아냥과 함께 나의 안좋은 표정을 읽은 다른 분이 물어왔다. 그래 그때까지는 개인적인 슬픔이니 하루만 할애하면 이 슬픔따위 잊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사 때문이었을까..

"아빠가 눈이 안보인대. 집에 밥차려 드릴 사람이 없구나."

엄마의 긴 카톡이 왔다. 회의하느라 뒤늦게 확인했는데 아 이번엔 가족이구나.

그 나사가 뭔지, 내 삶에 나사를 빠트린 것처럼 내 몸에 나사가 빠진 것처럼 내 머리에 나사가 빠진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억울해서 눈물이 맺혔다. 그놈의 나사가 뭐길래 하루에 이렇게도 많은 일이 일어나나. 도저히 회사에 있을 수 없어 정리하고 회사를 나왔다.

잠깐 화장실에 들려 엄마와 통화를했다. 집에 가겠다고 하고 끊는데 변기에 털썩 - 앉자마자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탁 풀려버렸다.

왜 다 나한테 이래.

흐르는 눈물이 감당이 되지 않아 훌쩍 거리며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다다랐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니 앙상한 갈비뼈를 내놓은 아빠가 잠들어있었다. 연락이 안닿는 다는 엄마의 말과 달리 오빠는 태연하게 이어폰을 끼고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진짜 나사때문인거 맞아? 너무 화가나 오빠한테 따졌고, 결국 엄마의 설레발과

오빠의 늦은반응이 만들어낸 콜라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방에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핸드폰을 던지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래도 그와중에 엄마가 무슨 잘못인가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해 천천히 오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마을버스에서 간간히 눈물을 참기 위해

나사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듣던 친구가

"드라마도 일이 한두개만 겹치는것만 봤지 이런건 처음이다. 너... 너무 힘들겠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조심하라고 하신 덕분에 더 드런 꼴 안볼수 있었는데 피한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너무 지치고 너덜너덜하겠다. 이것 참 시나리오도 이렇게 쓰면 작위적이라 그러겠네"

그리고 친구는

지금 나의 상황을 멋진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왜 자꼬 투명 벽에 날아드니. 그냥 해질때쯤 되면 반사되서 투명벽도 보이니까 기다려봐.

아파트랑 큰 도로 사이에 6,7층 높이의 투명 방음벽 있잖아.

아파트 방음벽 같은거 새들이 벽있는지 모르고 달려들어서 죽잖아.

그래서 그런데에 새 스티커 붙여놓고

벽에 부딪치지 말라고 엄청 큰 독수리 스티커 붙여놓아도 거기에 새들이 자꾸 부딪쳐서 죽거든.

아무튼 그냥 이럴때는 뭘 하려들지 말고 손안에 있는거나 쥐고 잠자코 있자

그래도 늘 어딘가엔 핏자국이 있어.

 

집에 들어와 책상위에 놓인 나사를 보았다. 그리고 자기 전, 나사를 꽉 조였다.

내일은 부디 풀리지 말기를. 바보같이 투명벽에 부딪쳐 피를 보지 않기를.


최근 게시물
보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