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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좋아하는 남자


나는 10대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경험이 있어야 글을 쓰지, 경험은 글 쓰는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될거야'

그래서 나는 경험을 하기로 모험했다

죽기전에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만 20살이 되어 이루었고

내가 정말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일을 30살이 되기 전에 찾아보자 해서

정말 그 일을 찾았고 정착했고 나는 현재도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랑도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왜 저런 남자들만 만나지 싶었던 친구의 아빠가 그런 말을 했었다

'결혼 전까지는 남자 많이 만나봐라'

친구는 아버지의 말을 정말 귀에 새긴건지

남자를 많이 만나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자격지심있고 모난 남자들만 만나서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 내 연애를 돌이켜봤을 때 나 역시 별반 다른 삶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라

내게 있어서 연애도 경험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통계는 경험치에서 나오는 확률적 계산이었다

예컨대 나는 B형과 O형을 더 좋아한다는 것과

A형 AB형은 나를 더 좋아하고 내게 먼저 고백을 해온다던가

94년생들은 항상 끝이 안좋다던가

뭐 그런식의 쓰잘데기 없는 통계 말이다

2018년은 솔직히 연애를 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력이 없었다고 할까

나는 1년이 넘는 (아주 힘겹게 버틴) 시간동안

돈이 정말 궁한 프리랜서를 했고

그 후에는 정말 돈을 바짝 벌었으나

지독한 야근에 시달리며 몸이 많이 상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날

여력도 기운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내 정신건강이 이로울 때 연애를 해야

정말 정신건강에 이로운 연애가 된다는 생각 때문인건지

도저히 그런 정신상태로는 연애를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타로로는 어차피 삼재이고

똥파리들만 들끊는...아니 이거는 2019년 운세였던것 같다

어쨌거나 연애운이 좋지 않으니

그냥 일이나 하고 돈이나 벌랬다

그로부터 2019년을 맞이하고

나는 기나긴 짝사랑 ...

그러니까 서른을 코앞에 두고

말도안되는 짝사랑을 1년정도 하다가

결국에는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에 몇번인가

짧은 만남은 있었지만 그 역시

유쾌한 만남들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자취를 시작하면서

정말 어디에 말하기도 창피한

짧은 연애를 하게 되었다

휴 여기저기에다가 말을 안해서

다행이다 싶을 만큼,

휴 짧게 사귄 기간만큼 아픔도 짧아서

다행이다 싶을 만큼의

연애였다

그 애는 고양이를 참 좋아했다

나의 이상형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 애는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았지만

친구네 고양이를 보고 반했다고 한다

혼자살게 되면 꼭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사귄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이는

츄르를 들고 우리 집에 방문했다

그때는 민블이가 아직 우리집에 온 상황이 아니었고

민희만 우리집에 있었다

그 아이는 민희에게 츄르를 주었고

민희 역시 경계를 하기는 했지만 츄르를 잘 먹었다

그리고 그 날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아이는 그 날 이후로 잠수를 타버렸다

불현듯 똥파리가 생각났다

향이 진한 꽃에 달려든다는 똥파리

내가 똥인가 파리들만 붙게 싶던 생각이 들었던

지난 추운 겨울이 문득 생각났다

위로랍시고 타로마스터는 내게

본인이 똥이 아니라 본디 향이 강한 꽃에는

그런 날벌레들이 쉽게 꼬인다고 위로를 건넸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잘생긴 오빠를 만났다

카톡개를 닮아 내 마음을 선덕선덕하게 만들었던

그 역시도 내게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양이들을 보고 싶은데 우리집에 올 수 없냐고

늦은 밤 연락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고양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역시도 그렇게

잠수를 타버리고 나를 차단시켜버렸다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이상 눈치를 채야 하는데

나는 또 미련스럽게 똥파리론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장 긴 썸을 탄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도 고양이를 키웠으나

고양이 별에 먼저 간 아이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와 매일같이 4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

우리는 새벽을 하얗게 지새우며 아침을 맞이했고

일상을 이어갔고, 만나기 며칠전에는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아

통화를 쉬어야 했다

그리고나서 만나기 전날까지

설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애기들이 좋아할 츄르도 가져오고

우리 희블이들과 나와 함께 가족사진도 찍을 거라고 했다

부천이 본가라던 그가 드디오 올라오기로 한 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건지 나중에 설명해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더이상 연락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내게 마가꼈나? 라고 되물었지만

마가 낀 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두번의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나는 그 남자와 시작하는게 두려웠고

자꾸 마음이 커지는게 몹시 싫었다

그것과 별개로 아랑곳없이

저돌적으로 직진해오던 그남자는

결국 전쟁을 일으키기도 전에 도망가버렸다

부질없는 고백들과 진심인지 순간인지 모를 말들이

난무했던 통화 속에서 나는

술에 취해 내가 울며 고백했던 "이제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는

말 한마디 만큼은 진심이었고 그 남자 역시

"내가 울던 그 골목에 같이 가고 싶다고, 가서 울었던 너를 안아주고 싶다는"

달콤한 말로 나를 어르고 달랬었다

그 순간은 진심이기를 바랬다

이래서 확정되지 않은 추억은 가까이 두면 안된다

예를 들어 신촌에서 자주 데이트하던 구 남친은

신촌만 가면 생각이나서 신촌을 자주 가지 못한다던가

그런데 집앞 골목, 집에 온 남자를 잊는건

매일 집으로 가야하는 내게 여간 곤욕이 아닐수 없다

그렇게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이별아닌 이별을 겪고 나서

나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날 소개팅을 한다는 핑계로 예쁜 꼬까옷을 처음 입었다

다행인지 그 날은 회사 사람들 중 절반이 휴가로

보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예쁨예쁨을 꾸미고도 귀찮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서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기분과 목소리가

어두워졌고 옆에서 일하던 언니는 나를 무척 걱정했다

소개팅 잘하라고 (그런 줄 알았던) 언니가 데려다주고

나는 방황한 채 목동을 배회했다

그리고서는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나는 라이언 킹을 보았다

라이언킹 노래가 이야기가 내 귀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심바를 보며 나는 우리 민희가 생각이 났고

집에가서 민희를 끌어안고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영화를 어떻게 본지도 모른 채,

쿠키영상이 있건 말건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집 고양이들은

내 번호 소리에 맞춰 울면서

나를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고 있으면 현관앞까지 나와 나를 배웅하며

하품하는 아이들

나는 민희를 끌어안고 현관 앞에서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민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민블이는 내 주변을 서성이었다

나는 더이상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자가 이상형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나자신을 내가 고양이들을 좋아하는 만큼 사랑해주는

남자가 이상형이 되기를 바랬다

그렇게 몇 분의 긴 울음 끝에

정신을 차리고 며칠 다이어트한다고

치아가 아프다는 핑계로 잘 먹지 못했던

음식과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내 머릿속을 멤돌던

매운 떡볶이를 해먹었다

리틀포레스트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는

본인이 한 요리라고 했다

나는 며칠동안 마치 내게 포상을 주는 것처럼

거나하게 그리고 격식있게 차려먹었다

밥블레스유에서 영자언니가 어떤 사연을 듣고

엄마 말도 안듣는 애가 왜 그렇게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냐는 명언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람문제든, 고민이든 뭔가 문제가 있을때는

무조건 든든하게 뱃속을 채우라고

하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주말동안 그 말을 허투로 듣지않고

뼈에 새기며 열심히 챙겨 먹었다

든든하게 뱃속을 채우고 나니

나는 좀 괜찮아졌다

그리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내가 냄새나는 똥이든 향기강한 꽃이든

나는 돈을 벌러, 할일을 하러 출근을 해야했고

미뤄두었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현관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가기 전 향수를 뿌려 냄새를 없애고

쓰레기를 처리했다

마음 속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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