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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흐린 이유

시야가 흐린 이유

(부제, 나의 몰타 나의 피난처)

은혜 만땅 받았던 수련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대적기도며, 이번에는 좀 달라진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한지 채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해버렸다.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고 깊은 상실감에 빠졌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이 나를 덮었다.

몸이 계속 안 좋은 상태로 있다가 밖에 비가 왔다. 천둥도 쳤고, 비도 이따금씩 내렸다.

친구는 빗소리가 참으로 좋다고 했다. 나는 괜한 심술에 빗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야근할 것 같았던 일정이 뒤로 미뤄져 다행스럽게 퇴근 시간이 당겨졌다. 허전한 마음에 자꾸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다가 어느덧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건물들의 불빛들을 보고 있자니 아른아른 거리는게 꼭 울것 같은 사람처럼 그렁그렁 불빛이 메달렸다가 사라지고 다시 메달리기를 반복했다.

눈이 많이 피곤한가보다 생각했다. 그런그렁 맺힌 불빛은 한없이 예뻤고 저기 어딘가에는 내가 오늘 해야했던 것처럼 야근하느라 불철주야 밤을 새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괜스레 내가 미안해지기도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다 시간을 보냈고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마을버스는 언제나 이 시간에 꽉차있었고 서둘러 퇴근을 재촉하는 어쩌면 저 멀리서 정시퇴근을 하고 오는 사람들일지도 모르는 이들이 꽉 차 있었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손잡이 하나 양보없는 곳에서 겨우 몸을 버티고 섰다. 우울한 노래는 끝도 없이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오늘은 선곡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루 한 달 일 년쯤 되면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

나는 아니야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전하게도 넌 내 하루하루를 채우고

가끔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괜히 움직이곤 해

의미없는 농담, 주고받는 대화 사람들 틈에서 난 아무렇지 않아 보여 무딘 척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너란 그늘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우리 마지막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잘 지내란 말이 전부였던 담담한 이별

 

텅 빈 회색 빛 거린 참 허전해 쓸쓸한 기분에 유리창을 열어

내민 두 손위로 떨어진 빗방울 가득 고이는 그리움 나의 맘에 흘러

왠지 네가 보고픈 밤 차오르는 눈물 떠오르는 나의 맘 속

비가 오면 내리는 기억에 번지는 아픔에 흠뻑 쏟아지는 너를 보다 선명했던 그 시간에 멈춘 채 추억에 젖은 채

오늘 하루 내 안부를 묻듯이 편안한 빗소리 아련히 물든 기억 너란 빗속에

 

누구랑 막 급하게 이별을 한 것도 비가 와서 누구를 떠올린것도 엄청난 그리움을 전해주는 누군가도 없는데 울컥울컥 눈물이 맺혔다.

모니터를 너무 오래봐서 눈이 시린것도 화장이 땀에 번져 눈에 들어간것도 시력이 안좋아서 시야가 흐려진것도 아니라 내 슬픔이 눈에서 감당할 수 없어서 울컥하고 터져버린 것이었다.

결국 두 정거장을 채 못가서 내려버렸다. 급하게 위로를 받으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시간을 걸어 엄마를 만났고, 궁금했던 이야기를, 위로받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으나 엄마는 그보다 더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나는 보듬어지지 못한 채 집으로 다다랐다.

집에 와서는 집은 집대로 또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고민들이 쏟아졌다.

위로를 찾아 헤맸는데 위로가 되지 못했던밤이 저물어 가면서 시야가 흐렸던 이유가 명확해졌고, 나는 지금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괜찮아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곳에 와서 내가 쓰고 싶지 않은 글들을 써내려가면서 손목이 망가져가면서 그래서 차올랐던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어딘가에라도 쏟아내고 싶어서 두서없이 허겁지겁 이곳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말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를 의식하며 잠잠해라. 잠잠하라.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이럴때 일수록 나를 의지하며 잠잠하라. 환경이 너를 압도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네가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마.

 

오늘의 말씀 나와 함께 잠시 쉬어라. 너는 지금까지 가파르고 험한 길을 여행해왔다. 네 앞길은 불확실성으로 덮여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을 살피지도 마라. 길을 가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를 준비시킨다는 것을 믿어라. 시간이 너를 보호하도록 설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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