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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나는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영부영 바빴던 날들이 지나고 다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밖에서 방황했고 밖에서 끼니를 떼웠으며 밖에서 전화를 했고 밖에서 책을 읽고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밖에서 보냈다.

집에서 씻고,자고,씻고,자고만을 반복하며 하숙하듯이 지낸 게 며칠째

목이 갈라지고 기침이 나오고 몸에 열이나고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 일이 폭풍처럼 몰려와도

이름만 불러도 ... 달려나와 한강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친구가 있고 이름만 불러도 예뻐해주는 언니들이 있고 이름만 불러도 원하는 걸 알아주는 엄마도 있으니까 괜찮았다.

그러다 또 며칠을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이대로는 못하겠다고 다 멈추고 그만하고 싶다고 했을 쯤 도저히 여기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비행기표를 끊기 위해 이리저리 사투를 하던 중 우연치 않게 우연히도 부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행갈 때마다 항상 혼자가서 이번 여행은 혼자가면 진짜 큰일날 것 같아서 (여행을 갔으나 생각의 늪에 빠지는 것 같은) 같이 갈 친구들을 찾았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친구들이랑 안맞아서 그러다가 결론은 동행을 구했다는 이야기.

동행에 대해 좋은 기억도, 안좋은 기억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의 늪에서 구해줄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꽤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나도 안좋은 기운과 영향을 뿜뿜 뿜어내지 말고 좋은 기운을 나눠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많이 발전했다, 우리민지

어쨌거나 나는 낯선 이에게 전화로 일정을 공유하다가 내가 지금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 내가 지금 동행을 구하는 이유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힘이 든지를 구구절절 이야기 하게 되었고

저 수화기 너머로 낯선 사람이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었다.

잘 듣고 있죠? 내가 이 말 했었나? 아니 그러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따위의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들어주는 행동 하나가 이렇게 크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었다.

여행 가기 전부터 기분을 최상으로 끌어올려놓고 싶었는데 누군가 덕분에 잘 끌어올려서 좋은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과 설렘이 불현듯 문을 두드리면서 찾아왔다.

지금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전의 나보다, 엊그제의 나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행복해져서 다행인 새벽이었다.

금요일 새벽,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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