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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동안 할 일도 많았고 할 말도 많았던 7월의 마지막 주를 고개를 넘듯 힘겹게 넘겼다.

안 올 것 같았던 구성안이 통과가 되었고 안 올 것 같았던 촬영날이 왔으며 안 올 것 같았던 동료의 마지막 날이 왔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8월을 맞이했다.

무박 3일을 거의 새다 시피 하면서 잠을 못자고 며칠을 또 꼬박 몇밤을 밤을 새며 술을 마셨는데도 체력이 말짱한건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를 어떻게해서든 풀기위해서 그동안 놀지 못했던 헛헛함을 어떻게해서든 달래기 위해서 버텼는지도 모른다.

무너질 것 같았던 아슬아슬 위태위태했던 멘탈과 체력은 토요일날을 순삭하며 방전이 되어버렸고 겨의 9시가 다 되서야 눈을 뜰수 있었다.

만나고 싶다던 친한 언니의 부름에 망설일 새도 없이 홍대로 나갔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해"

그리고 밤을 새며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안나는 호객행위를 하는 남자들과 하루 재밌게 놀자는 남자들의 손에 손목을 이리저리 내어주다가 민증도 가지고 오지 않은 언니가 자신있게 안내하던 작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컷 이야기하고 놀다가 언니가 화장실을 갔고 내 뒷편 등을 기대고 있던 테이블에서도 맞은편에 있던 친구가 화장실을 갔다.

나는 낯선 남자와 등을 맞대고 서로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테이블에 집중하고 있었고 모두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었다. 시간은 멈춘듯 느리게 가고 있었고 심심함과 무료함이 느닷없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내 뒤에 앉아있던 남자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미쳤지, 내가 무슨 짓을!'

채 후회와 깊은 한숨이 밀려오기 전에 생각보다 빠르게, 머리보다 손이 먼저 갔다는 사실을 그 남자가 놀라 뒤돌아 볼 때 알게 되었다.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던 남자를 그제서야 보게 되었다. 나보다 어려보였고, 순하고 멍뭉상처럼 귀엽게 생겼다. 뽀얀 얼굴에 쌍커풀하나 없는 선한 눈매는 안타깝게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얼굴상이었다.

하필... 무슨 말을 할까 잠시 멈칫하다가 미쳐 내 머리가 말릴 새도 없이 괜찮으시면 같이 놀겠냐고 제안했다. 나 왜이러지 싶었던 순간.

심심해서 그랬다고 합리화하기에는 나는 순간 그가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다.

후회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에 벌을 주기라도 한 듯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댔다.

남자는 당황해 말을 어버버 하다가 친구가 오면 이야기 해보겠다며 잠깐의 대화동안 잠깐을 세번이나 넣어서 이야기했다.

나도 놀라고 그도 놀랐던 순간 고요했던 적막이 깨졌고 무엇인가 질서정연했던 일을 어지럽히기라도 한듯 나는 곧 혼날 아이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왔고 무엇무엇이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뭐, 까여도 되! 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소심했던 거지. 친한 언니한테 말도 안하고 저지른 행동에 언니는 자꾸 거짓말 하지말라며 믿지 않았고 나도 이 상황이 거짓말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맞은편에 앉았던 친구 역시 꽤나 준수한 외모를 지녔고 언니는 다시한 번 그 친구가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고 또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내 뒤를 두드렸다. 남자였다.

그리고서는 정말 공손하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핸드폰에는 메모장에 두줄이 적혀있었다.

같이 일하는 여자직원들이 오기로해서 못 놀 것 같다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아네 알겠습니다 하고 뒤돌았지만

'흑 ... 나 너무 창피해'

감정이 훅 주체가 안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는데 지켜보던 언니가 더 민망한 듯 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정말 여자 직원들이 왔고 번호를 물어보는게 낫지 않냐는 언니의 말에 나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러고서도 도망치듯이 작가를 나왔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후다닥 =3 사실 나갈 시간이 되서 나간건 맞지만 너무나도 이상해 보일 정도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그리고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몇번을 물어볼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마음을 접었다.

인연이라면 언젠가 또 마주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지 않겠어?

사실 되게 아쉬웠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반반이었다. 너무 아쉽기도 하고 너무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어 하는 마음과 아냐 언젠가 만나겠지 하는 마음이 공존했던 잠깐의 새벽

예전에는 안달복달하며 어떻게든 인연을 잡으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안되는 것을 여러 사람과의 경험을 통해 처절하게 겪었기 때문!

나는 이제 괜찮아지기로 했다. 그래야지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테니까

인연이 아닌건 아닌걸로 타이밍이 맞았던건 맞았던 걸로 이런 식으로 상황을 내식대로 내입맛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

7월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른비와 늦은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다.

이른비, 이른과 비는 참 안 어울리는 단어인데 뭔가 계속 머릿속을 멤돌았다.

내가 2017년에 만났던 사람들은 이른비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때 올 때가 아닌데 온 사람들'

그래서 예측가능해서 우산까지 챙길 수 있게 어딜 가든 걱정안하고 안심할 수 있게 2017년 하반기는 늦은비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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