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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은 시계가 맞지 않는다.

시계방은 시계가 맞지 않는다.

1. 나름의 노하우

시간이 흐르고 내가 우울할때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했던, 힘들때마다 만나주고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왜 힘들때만 찾냐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나는 우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고 나도 힘들고 무거운 이야기를 주는만큼 나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거움의 무게를 굳이 재본다면 내가 받은 무게가 더 클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연속으로 들으니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거지

인지가 더뎌지면서 내 머릿속에 에러가 떴다.

아 이제 정말 사람한테 터놓으면 안되겠구나.

내 힘듦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가 되니까

정말 친구말대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버틸 수 있는 노하우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2. 어정쩡한 독립_내게도 광복이

그리고 나서도 내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이사를 했고, 내게는 하메들이 생겼으며 이제는 신촌을 집처럼 생각하며 다녀야 한다.

대학교때 친구들과 함께하고 용돈을 받아서 타 쓰던 때와 달리 나는 어정쩡한 독립을 이렇게 시작했다.

족히 일주일을 틈틈히 걸쳐 짐을 쌌고 금요일에는 꼬빡 짐을 싸며

28인치, 24인치, 20인치, 백팩에 가득 짐을 채워 넣었다.

여름-가을 옷 몇벌을 챙기는데 어마어마한 양이 들었다.

한 사람이 빠져나가고 들어가는 짐이 이리 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나는 룸메나 나눠쓰는 쉐어하우스가 아닌 오로지 독립된 하나의 공간이 생기길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러기까지는 부단히 노력해야겠지만 조금 더 돈을 모아서 내년에는 혼자 사는 걸 목표로, 진정한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룸메는 아직 모르는게 많지만 친절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털털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한 아이였다.

친해지면 좋겠지만 지금은 적당히 선이 그어져있는 상황.

나는 꼭 청춘시대에 나오는 1화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은재의 벨에포크 적응기를 보는 것처럼

화장실 물소리에도, 변기소리에도, 먹는 소리에도, 한밤중 잠이 안와 보는 티비화면 불빛에서도 핸드폰 딸깍 소리에도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나였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편하게 머무를 수 있겠지? 그래도 작게나마 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래, 어렵지만 이렇게 시작하는거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거야.

라고 위로하면서.

 

3. 카르페디엠!

그리고 내 삶에서는 또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정말 특이한 친구를 하나 만났다.

나는 여지껏 말을 더 잘했던 친구들만 만나왔다.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되뇌이게 만들었던 무수한 날들을 보내오면서 나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에서 뚝뚝 나를 향한 애정이 떨어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말은 형편없게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말을 더듬는 사람인데 표현도 서툴고, 쑥쓰러움이 많아 눈도 못마주치는 사람인데

행동에서는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많이 배려하는지 나를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지 나를 얼마나 많이 귀여워하는지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스럽게 보는지

내 옆에 얼마나있고 싶어하는지가 묻어나온다.

그치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없다고 표현이 조금만 더 다정하고 상냥했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보며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나를 민지야~라고 불러주었고 그게 꼭 마음에 들었던 사람

그도 나도 우리가 서로 얼마나 갈지 장담하지 못한다. 나이 차이는 있고, 그래서 같이 미래를 그리기 힘들지만 지금, 우리는 현재에 아주 만족한다.

만날때마다 즐겁고, 만날때마다 행복하고 만나고나서 보고싶고, 만나고나서 그립다

(그치만 우리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기에 여기에다가만 털어놓는다.

언젠가는 나도 친구들에게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지?)

 

4. 본디 좋은 변화다. 순풍이다.

이 정도면 현재에만 충실하고 살고 싶다.

문득 이사 들어오고 내 하메와 첫날 밤 서로 조심해야할것들과 내가 궁금한것들의 질문이 오가다가

문득 이 친구가 하는일이 궁금했고 이 친구는 연극과 연기를 한다고 했다.

알바를 2개씩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친구. 그리고나서도 미래에 무엇인가 되고싶다가 아니라 지금 배우고 있고, 하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며 현재에 충실하는게 목표라고 말한 멋진 친구

이 친구는 나보다도 일찍 독립을 했고 나보다도 먼저 제주도에서 1년을 살다왔으며 현재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하고싶었던 일과 닮고싶은 마인드와 해야할 일을 다 먼저 이뤄낸 친구. 어려도 배울 점이 참 많은 친구였다.

이제 내 생활 환경이 바뀌었다. 나와 매일 연락을 하는 사람도 나와 매일 생활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는 많은 걸 받고 느끼고 있다.

이건 본디 좋은 변화이다. 순풍이다.

 

5. 시계의 본분, 그리고 나의 본분

오늘 문득 출근길에 시계방을 힐끔 보게 되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시계방이 존재하는 특이한 곳

그리고 시간이 궁금했던 나는 문득 시계방을 힐끔댔고 그때 알게 되었다.

시계방의 시계들은 제각각 다 하나같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맞출 필요도 남이 내게 맞출 필요도 없다.

그치만 중요한 것은 세시를 가르키는 시계든, 열시를 가르키는 시계든 현재 시간을 인지하고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게 시계의 본분이고, 지금 나의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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