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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마주한 휴식을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

이상하리만치 늦잠을 자버린 오늘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고, 찾아주는 이도 없어

내심 조바심이 났지만 또 안도하면서 향했던 출근길.

출근시간을 2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회사에 도착해

할일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PD가 하는 편집에도 관여를 하고

조연출이하는 편집에도 몇마디 덧붙이며

그렇게 월급루팡을 하며

'하루정도는 이래도 되잖아?'

라며 빈둥빈둥 놀았다.

며칠을 CG팀이 고생하느라, 또 연출팀이 힘을 빼느라

나도 같이 야근을 하고 나도 같이 영상을 수정하느라

며칠을 고생한 끝에 꿀같은 불금을 허락 받았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칼퇴에

나는 방황했고 급히 가까이 있는 친한 친구 몇에게

SOS를 쳤으나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내가 칼퇴하면 친구들은 모두 바쁨 모드에 돌입해

약속을 잡지 못한 어린양은 6시부터 퇴근하라고 한 상사의 말과 상관없이

마치 다음 스케쥴이 없어 길을 잃고 만 어린양처럼

거의 7시 (정시퇴근)가 다 되서야 어디론가 가볼까 하고

무겁게 엉덩이를 들었다.

(남들은 좋다고 일찍 가던데, 왜 나는 꼭 퇴근하는 날 아무일이 없는걸까...)

그래서 혼자서 맞이하게 된

이 꿀맛같은 휴식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코앞에 CGV인데 영화나 보자! 하고

친구랑 같이 보기로 했던 영화를 퇴근길에 혼자 예매해버렸다.

자정 넘은 시각에 심야영화를 에매하고 나서

시간이 붕 떠버린 나는 돌아오는 길에 홍익문고에서 책을 두권샀다.

원래 전부터 읽고싶었던 언어의 온도를 읽으려 집어들었으나

내용이 부댔껴 그 옆에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말의 품격을 집었다.

그리고 김영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김영하 소설을 사려했던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그 옆에 내가 또 애정하는 김애란 소설의 신작을 집어 들었다.

바깥의 여름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집

이상하게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읽어야 할것만 같아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깥의 여름을 집어들었다.

예정에도 없던 도서 목록을, 예정에도 없던 소비를,

예정에도 없던 두권씩이나 사게 됬지만

즐거운 소비임에는 분명했다.

집에 들어와 아무리 생각해도 빨래를 돌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빨래를 돌리기로 마음 먹었다.

저녁으로 다 못먹은 빵을 해치우고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빵을 먹었다.

그 사이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한 번하고, 내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보여줄 예쁜 꼬까옷을 고르고 미리 짐도 챙기고

선물까지 꺼내놓고나서야 10시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책한권과 다이어리를 챙겨들고 24시간 카페로 향했다.

영화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시간, 그것도 심야를

룸메 지원이와 했던 일을 아주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그것도 혼자.

내가 독립하고 나서 가장 바랬던 자유가 이런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가족들과 같이 살면서 종종 차가 있는 단비와

심야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항상 엄마의 독촉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나를 걱정하는 누구도 없다는게

내심 안도도 되고 기분도 좋고 여러모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괜히 이상한데서 나 좀 자유해진거 같아 라고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스물일곱이나 먹어서 나 아직도 어른이 안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독립아닌 독립을 하고 나서야 ... 조금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다.

9월이 되면 또 엄청 바빠지겠지만

전까지는 내게 허락된 이 휴식을

온전히 누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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