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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식으로든 애도

어떤식으로든 애도

전혀 일면식도 없던 그저 티비화면으로 또는 스크린으로 오며가며 얼굴이 익숙했던 한 배우의 죽음

지병도 아니었고 연로해서도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고 벙찌는 마음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가 갔다

준비된 이별도 슬픈데 예고되지 않은 이별은 얼마나 더 슬프겠냐는 댓글을 읽으면서

믿기지 않아 몇번이고 기사를 보고 또 보았다

그날은 또 유난히 일찍 끝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퇴근을 재촉하던 어느때와 다름없는 저녁 그도 일상중 하루를 보냈을 어느때와 다름없던 저녁

퇴근길 버스는 언제나처럼 북적였고

나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라디오가 고요하고도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느하나 그 누구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라디오 속에서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살아생전 스크린 속에서 기타를 메고 나와 불렀던 노래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가사와 멜로디가 엉켜 울음을 터트리듯 버스를 장악했고 그 안에서는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두 숨죽이며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을 엄마와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나뿐 아니라 그 시각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와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예고되지 않았기에, 얼마전까지 웃고 있었기에, 밝은 모습으로 인사했기에 모두가 믿지 못했던 일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리도 얕아서 한발자국을 더가면 죽음이고 한발자국을 덜가면 삶이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허탈해서

모두가 며칠째 그의 기사를 클릭하고 또 그렇게 울음을 터트렸던 것일까

 

한참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졌을때, 모방자살이나 자살전염이라는 또 다른 말로 베르테르 효과가 언급된 적이 있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된 말로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다가 결국 권총자살을 하고 만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

실제 유럽에서는 베르테르 열풍이 불면서 옷차림은 물론 고뇌에 공감하고 심지어 모방 자살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유명인이 죽을 때마다 팬들이 따라 죽었다는 몇가지의 증거들이 계속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장국영 등

참으로 신기한건 베르테르의 효과 반댓말은 파파게노 효과라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

이 말의 어원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캐릭터 파파게노에서 시작되었다 새잡이꾼 파파게노는 사랑하는 연인 파파게나가 사라지자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 세 요정들이 나타나 노래를 들려주는데 파파게노는 이 희망찬 노래를 듣고

자살을 선택하는 대신 종을 울린다 그러자 다시 그의 앞에 파파게나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요정의 도움을 받아 자살충동을 극복한 일화에서 파파게노 효과가 유래했다

참 신기하다. 베르테르 효과의 반댓말이 파파게노 효과라면 모방 자살을 막는 것은 언론 보도 자제인 것으로 해석이 되니까

 

한참 쏟아져나오는 그의 기사들 당시 사고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부터 사고 후 차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망 후 그의 지인들, 연인에 대한 일거수일투족 그와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동료 연예인에 대한 조문소식까지 일일이 사진으로 담고 기사를 쓰면서 실시간으로 전달이 된다는 게

배우이기로 선택한 그에게 그가 끝까지 짊어져야할 연예인이라는 숙명이 이런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알고싶지만 때로는 알고싶지 않은 기사들 때로는 침묵해줬으면, 자제해주었으면 하는 기사들

버스안에서 느꼈던 그 고요처럼 조용히 그를 보내야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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