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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

새해가 되고

정확히 한달동안 아무런 글을 쓰지 못했다.

딱히 바빴던 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치 내 옷을 입은 것처럼

딱 맞았던 회사를 정리했고,

3년을 함께 보냈던 친구를 떠나보냈고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홀로 생일을 맞았다.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연말부터 앓고 있던

우울증과 싸우면서 많이 힘겨워했다.

어떠한 글도 쓸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고

그 마음을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4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만났던 남자친구 중에 가장 잘 맞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까지 혼자 아파했었다.

그때는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나 혼자이고 싶었다.

집의 무게, 직장에서의 무게,

윤민지와 윤작가와 딸이라서 견뎌야 했던 무게가

너무 커서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는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직장에서는 작가가 나밖에 없어서 크든 작든,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했으며

그래서 친구들과의 약속도 남자친구와의 만남도

지속할 수 없었을 정도로 바빴다.

또 한편으로는 바빠서 내가 이정도로 아픈줄도 몰랐었다.

여기서 멈추고 , 여기서 울면

한없이 주저앉아 울것만 같았다.

그래서 참고 또 참으면서 걸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미니도 만났다.

작은 공간에 갇혀서 눈이고 코고 짓물러서

낑낑대며 우는 모습이 마치 나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를 내 품으로 안았다.

그 아이는 내 품에 안겨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아이 내가 치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숨소리를 들어보면

살려고 내뱉는 작은 숨소리를 가만가만

귀 기울여보면 살고싶다고 내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얼굴을 보려고 갔던건데

사료도, 모래도, 이동장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미니를 데리고 왔다.

미니는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고

나는 미니를 오빠 생일선물로 가족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그 후에도, 나는 나을 줄 알았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말이 많아졌고

집에 조금 더 일찍 들어갔고,

아빠도 많이 웃으면서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팠고

낮에는 많이 웃고 떠들다가

밤에는 많이 울고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 우울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는 안지하고 있었지만

이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쇼핑도 해보고 술도 많이 마셔보고

마음껏 웃어보고 여행도 갔는데

그래도 치료가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친구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너무 충격이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너무 큰 충격이었다.

예쁘고 고운 영정사진을 보면서 그 모습이 마치 나같기도 했다.

10여년 만에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말을 잃고 앉아있었다.

울음을 꾹꾹 참으면서 그렇게 앉아있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오셔서 한마디한마디 할 때마다

울지 않으려 꽉 깨문 입술이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후유증이 잔잔하게 그리고 또 오래 갈거라는 걸

그리고 비단 나뿐이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나는 또 마음이 저려왔다.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참 많이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하나씩 손을 놓기 시작했다.

집안 일에서 손을 뗐고,

직장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놓기 시작했다.

오래 다니던 교회도 잘 안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사부작거리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다. 그때는.

회사 사람들이랑 정말 많이 친해져서 아쉬웠다.

여자피디들 둘이랑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 나눴다.

처음으로 마음이 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힘겹게 1월을 보내고 나서 나는 바로 짐을 쌌다.

여행 가서 혼자다니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에

가기 전부터 동행을 구했다.

내 예상대로 나는 혼자일때면 너무 불안했고

그래서 평소 잘 피지도 않은 담배를

제주 바람이 담배가 잘 말리는 곳이라는 핑계를 대며

한갑을 일주일동안 꾸준히 피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담배를 피었다.

담배에도, 성산일출봉에도

이상하게 그 아이가 생각났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나를 잡았다.

그래도 여행내내 나는 좋은 사람들과

뚜벅이라면 보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보면서 참 행복했다.

그래서 계속 선물을 줬던 것 같다.

그걸로도 표현되지 않았지...

나는 잊지못할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게 되었고

분에 넘치는 사랑도 받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큰 총족을 얻었고

기대했던 것들에서 크게 실망했지만

그게 여행일거라는 생각에 게의치 않았다.

단편적으로 눈이 와서 너무 춥고 고생했지만

눈이와서 어디가서도 보기 힘든 제주를 경험했으니까.

친구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내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했다.

자꾸 울컥울컥해서 생일 카톡을 읽지 못했다.

그렇게 이틀, 삼일이 지나갔다.

걱정되는다는 연락이 많이 왔다.

이번에 알았는데 카톡이 많이오면 999에서 더이상

카운트가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틈틈이 고맙다는 답장을 하고

그래도 내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기 전날,

단체방이 너무 많아서 카톡을 탈퇴하고 다시 들어왔다.

정말 완벽하게 여기다 다 버리고 오고 싶었다.

종종 친구들이 내게 넌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너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나는 그런 위로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똑같이 내게 그랬다.

민지야 여행갔다고 꼭 기분이 좋을 필요는 없다고

너가 신나고 즐거워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내가 중문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내가 성산일출봉에서 울었을 때도

신나고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감흥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아마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좋은걸 보면서도

울고 있구나 내가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겁이나서 내가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얼마나 더 주저앉아있을지 겁이나서

속이 상해서 막상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볼 수있었고

나를 마주할 수 있엇다.

나는 내가 여기서 해야할 몫이 있었고

이미지가 있었고 역할이 있었다.

거기에 집중하느라 나는 나를 보지 못했다.

힘들다고 하는 걸 애써 외면해왔다.

혼자인게 싫어서 사진찍고

계속 친구에게 전화하고

나를 마주보기가 두려웠다.

그러다가, 결국 돌고 돌아서야 이야기해주었다.

진짜 힘들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

진짜 힘들때는 예쁜거 보고 있어서도 울어도 되고

진짜 그러고 싶을 때는 그냥 주저앉아있어도 되고

너 좋으라고 간 여행인데 왜이렇게 눈치를 많이 보냐구 .

어떤 것이든 그거 다 죄 아니니까

하고 싶은거 다 해도 되

그 이후에 여행은 말해 뭐해.

내 인생 여행 베스트는 단연코 뉴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갱신할만큼,

정말 내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친구를 만나게 해준

상해 여행을 제칠만큼

너무 좋았고, 모든 순간이 다 감동이었다.

밝고 좋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다시

회복되었고 괜찮아졌다. 아주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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