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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싶었던 말

나는 이 구절을 기억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언어로 탄생한 우리가 '말'에 기댈 수 밖에 없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너 자체로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

'애썼다, 수고했다'는 어루만짐의 말에

갈증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귀에 스며들어 나를 삶 쪽으로, 빛 쪽으로 이끌던 말들은 단순하고도 소박했다.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밥 먹었어?"

"어디야? 보고싶어...."

"너 때문에 꿈을 꾸게 됐어. 반짝반짝 살아있다는 걸 느껴"

"살다가 힘들 때, 자존감이 무너지고 누구도 그 무엇도 믿지 못할 것 같을 때

기억해. 온 마음을 다해 널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뜨겁고 아린 삶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 주던 말들.

인정한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미 듣고 싶었던 말을 분에 넘치도록 들었음을.

내게 스며들었던 숱한 아름다운 말들.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깝지 않던 말들, 딱히 내가 아니라도,

젊거나 나이 들거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모든 이들이 한결같이 듣고 싶은 말.

당신, 참 애썼다.

끝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새벽잠을 설친 순간을 기어이 이겨내며

린 참 치열하게 달려왔고, 달려가고 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 마음 다치치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도 있으리라.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을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 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당신 이마에 손을 얹는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다.

내 이마에도 손을 얹어다오.

한 사람이 자신의 지문을 다른 이의 이마에 새기며 위로하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거품처럼 들끌는 욕망에 휘둘리느라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침묵이

우리를 품어주리라.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정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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