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지 않는 자존감
내려가지 않는 자존감
어느덧 9월이 왔다.
파란만장하고 길고도 길었던 8월을 겨우,
어르고 달래며 보내고 난 뒤에야 나는
가빴던 숨을 내쉬면서 9월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게 8월은
바쁘기도 했고 한가하기도 했었는데
사실은 바쁘고 싶지 않은 게으름이
내 발목을 계속해서 잡았던 한 달이기도 했다.
덕분에 마음껏 늘어지기도 했고
짝사랑에 혼신을 다하기도 했고
예배에도 집중해서 기도할 수도 있었고
여러가지 면에서 얻는 것도 있었지만
그 얻어진 것들이 실상
내 주변에 쌓이지 않고 무너져 내리는 것들이어서
아쉽고 또 많이 슬펐던 한달이었다.
그리고 9월에 접어들면서
이 힘들고 긴 2018년도 얼마 안남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는 언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안정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상투적인 고민들이
저 절벽까지 내몰아치기도 한 가을을 맞이했다.
독서의 계절, 기도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어떠한 계절을 맞이할까 고민하면서
9월을 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곳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슨 글을 써야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그러다가 문득 해야할 말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왜 흔히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가을을 탄다라고도 말하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은 내게 사치다. 마음을 접어야 겠다.
왜냐면, 짝사랑이 잘 안되기도 했거니와
그러는 와중에 소개도 받았지만
가혹한 신의 장난인것인지
종교가 좀 맞지 않아 다가오는 사람을 거부했다.
예전부터 내가 느낀거지만
사람을 얼마나 만났든 (길든, 짧든)
에너지를 써야 하고, 마음도 써야한다.
지금은 그 대상이 한 사람으로 족했고
비록 그게 외 사랑일지라도
그리고 그게 꼭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지난 날처럼 서둘러, 급하게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구나. 약간 회의적인 모드로 돌입했다.
그래, 사람 마음이 어떻게 다 같을 수 있겠어
그럼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 제짝을 만나고 사랑하겠네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방도 내가 좋을 수는 없는거지.
나를 좋다고 한 사람들은 내가 좋다고 느끼지 않은 것처럼 말야
라고 다독이며 나를 위로했지만
어설픈 위로는 위로만도 못하고야 말았던 밤이었다. 어제는.
그러면서 오래 알았던 언니랑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참 미묘한게
타인에 의해서 생기지만 결국
그 마음을 키우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언니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 연애 왜 나는 쉽게 되지 않을까.
좋은 사람은 언제 만나나.
왜 내 주변에는 나 좋다는 사람이 없나.
그런 이야기들로 자존감이 하나씩 내려갔다는 이야기.
자존감은 사랑과 같이
타인에 의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또 타인에 의해서 없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키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존재같은것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의미 없다는 거다. (결국 또 회의적이 됐지만)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로
내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내 스스로 다치지 않게 하려면
나는 최소한의 나를 지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 의해서도 내려가지 않는 자존감이 필요한 것이었다.
원래 연애할때는 사람을 길게 보는 편도 아니었고
마음이 맞으면 곧장 마음을 고백하는 직선적인 타입이었는데
이상하게 짝사랑만 하면 1년, 3년 길게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짝사랑을 하니
그동안의 나는 엄청나게 현실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고
어설프지만 몇번의 연애를 하면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기 때문인지
아닌거에는 '아, 아니구나' 감이 오더라.
그래서 여름날 폭염처럼 지독하게 찾아왔던
내 짝사랑을 이만 일찍 접기로 했다.
그냥 잠깐 아팠다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무언갈 딱히 하지 않았으니까.
기대할것도 더이상 미련둘것도 없기는 했다.
발전이 되지도 못하고 끝나버렸지만
내가 더 붙들고 있기에는
내가 놓고 있던 수많은 기도들과
내가 놓아 버린 수많은 상황들이
너무나도 형편없이 내쳐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나를 수거하기로 했다.
그러니, 그때까지 부디
누구도 건들 수 없도록
누구에 의해서도
내려가지 않도록
자존감도, 자존심도 잘 지킬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